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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장이 하나부터 열까지 단 한 개도 정치학은 물론 ‘학문’ 자체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어 보충해드리고자 답변합니다.
1️⃣ 정치학은 기본적으로 ‘정치 과학(Political Science)’입니다. 초기 정치학이 윤리, 덕과 같은 덕목과 결합하여 ‘좋은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집중했다면, 현대의 정치학은 인간 사회에서 ‘정치’라는 행위를 두고 벌어지는 상호작용이 일정한 경향성이나 법칙성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정치학에 ‘과학’이 붙은 이유는 바로 이러한 경향성이나 법칙성을 발견하기 위해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생산되는 양적 연구들은 모두 과학적 방법론을 채택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설 제시-검증의 순서를 따릅니다.
2️⃣ ‘정치과학’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제가 제시한 문헌들은 이러한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발견된 경향성이나 법칙성 뿐만 아니라 정치학에서 사용되는 일반적인 ‘개념’들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개념이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그물입니다. 예를 들어 ‘정치’라는 것도 하나의 개념이고, 정치라는 개념을 정의하는 많은 주장들이 있습니다. 가령 데이비스 이스턴은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정의합니다. 정치학 개론 시간에 아마 학부생들이 가장 처음 듣는 학자와 개념 이름이 바로 이스턴일겁니다. 또한, 법칙성의 대표적 사례로 ‘뒤베르제의 법칙’이 있습니다. 소선거구제를 채택한 국가는 대체로 양당제이고,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한 국가는 대체로 다당제의 형태를 가진다는 법칙입니다. 이게 ‘법칙’으로 불리게 된 건 그간의 사례들을 토대로 볼 때 ‘법칙’으로 인정될 만큼 안정적인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3️⃣ 이런 개념들과 법칙성들은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거나 낡아 도태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의 개념, ‘정당’의 개념, ‘선거’의 개념, 나아가 ‘친위쿠데타’의 개념 등을 알지 못하고서 주장을 펼칠 수는 없겠지요. 당신이 ‘옛날교과서’라고 아무리 우겨봐야 ‘지금도’ 교과서로 쓰이고 있는 문헌들이고, 나 역시 정치학에서 사용되는 일반적 개념을 먼저 학습하라고 추천해준 것입니다.
4️⃣ 어떤 주장은 낡고 도태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Lipset이 제시한 근대화 이론(modernization theory)은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여러 차례 반증되고 반론되었습니다. 근대화 이론의 핵심은 경제발전이 되면 민주주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후대의 연구에 의해 여러 차례 이론적 한계점과 반증 사례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근대화 이론이 완전히 도태되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고 여전히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선대의 연구자들이 남긴 직관과 인사이트는 귀중한 자산이므로, 이런 연구들을 공부하지 않고서 갑자기 새로운 이론을 공부한다고 뭔가 새로운 게 나오진 않겠지요. 또한 연구 과정에서 선행 연구를 성실하게 공부하는 것 또한 중요한 작업입니다. 선행 연구들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현실과 이론 사이의 갭을 찾아내거나, 이론과 이론 사이의 공백을 찾아내는 등의 작업은 연구질문과 가설을 도출하기 위해 필수적인 절차입니다.
5️⃣ 곁가지로 두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1) 당신은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공부한 것이 ‘도태되고 거짓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구체적인 내용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내게 효과적으로 반박하고자 한다면 내가 제시했던 문헌들을 읽고 어떤 부분이 ‘도태되고 거짓인지’를 입증하면 될 일입니다.
(2) 내가 입문도서로 제시한 박상훈 선생의 저서가 ‘특정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라고 함은 좌우파 문제 이전에 정치를 해석하는 관점의 문제입니다. 박상훈 선생은 정당 이론 전문가이며, 정당의 행태에 대한 이해에 있어 특정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운운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의 주장이 비록 특정한 관점을 가지고 서술되었다 하더라도(또, 특정한 관점을 가지는 게 딱히 문제가 되지도 않습니다만) 입문 차원에서는 그런 관점에 관계없이 우선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추천했습니다.
6️⃣ 뭔가 곁가지로 반박하고 싶으신 마음이 굴뚝같은 건 알겠습니다만 당신은 지금까지 주장에서 단 하나도 반론이라고 할 만한 당신의 주장이 없습니다. 저는 제가 제시한 책들을 모두 읽었고, 그렇기에 추천했습니다. 책 내용 설명은 당연히 할 수도 있고요. 당신과 뜻을 같이 하는 몰지각한 인간들이 챗지피티 운운하는데, 나는 내 글을 GPT를 써서 쓴 바가 전혀 없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입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사람이 나타나면 지피티 운운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지피티를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론다운 반론을 하셨으면 합니다. 그게 당신의 성장에도 이롭습니다.